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커피를 식혀 마시는 데 익숙해졌다.
아이는 뜨거운 걸 잘 못 먹는다.
입이 델까 봐 조심조심 불어주고,
컵도 늘 미지근한 물로 헹군 다음에야 무언가를 따라준다.
그렇게 아이를 챙기다 보면,
내 커피는 늘 가장 마지막이 된다.
처음엔 아쉬웠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그걸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상상이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꿈꾸던 ‘엄마의 여유’였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 입 마시려던 순간
“엄마, 이거 봐봐!”
“엄마, 물 줘~”
“엄마, 이거 흘렸어...!”
그러다 보면 커피는 어느새 미지근하거나, 그냥 차갑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제는 그 식은 커피가 싫지 않다.
아이가 곁에 있다는 뜻이고,
내 하루가 여전히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해서.
식은 커피를 마시는 순간마다
“그래, 나 지금도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살짝 울컥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뜨거운 커피가 그리운 날이 없진 않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혼자 카페에 앉아 조심스레 입을 대는
그 첫 모금의 온도는
마치 엄마인 나 말고,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순간 같아서
괜히 울컥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이 얼마나 자주 오겠는가.
대부분은, 다시 식은 커피를 들고 아이 옆에 앉아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을 줍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식은 커피를 마신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그냥 내가 선택한 방식의 사랑이다.
아이는 뜨거운 걸 못 마시고,
나는 뜨거운 걸 기다릴 시간이 없는 대신
따뜻한 마음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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